우리나라 마약류 관리의 허점을 극복해야 한다.

(사진 설명 : 의료기관과 약국 등에서 마약류 취급자는 반드시 모든 마약류를 이중 잠금장치가 있는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한국은 법률상 마약류를 엄격히 관리하는 국가로 분류된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로 세분화해 관리하고, 처벌 수위 역시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용 마약류를 둘러싼 현실을 들여다보면, 제도와 현장 사이에는 적지 않은 허점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합법 처방’ 영역에 대한 과도한 신뢰다. 자낙스, 리보트릴, 디아제팜, 졸피뎀 등 다수의 향정신성의약품은 법적으로 마약류에 해당하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불안·불면·공황 등의 증상에 비교적 관행적으로 처방되고 있다. 처방 자체가 합법이라는 이유로 중독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지고, 환자 역시 ‘병원에서 준 약이니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기 쉽다.

장기 처방 관리의 느슨함도 구조적 문제로 꼽힌다.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이 도입돼 처방·조제 기록이 전산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동일 성분 약물이 장기간 반복 처방되거나, 의료기관을 옮겨 다니며 처방을 이어가는 사례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하고 있다. 시스템은 ‘기록’에 강하지만, ‘개입’에는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또 하나의 허점은 의사와 환자 모두를 대상으로 한 중독 교육의 부재다. 의과대학과 수련 과정에서 마약류 중독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은 여전히 부족하고, 환자에게도 장기 복용 시 의존성과 금단 위험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국 오피오이드 사태 초기처럼, “필요한 환자에게는 써야 한다”는 논리가 중독 위험 경고를 압도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처방 책임 구조가 모호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마약류 오남용이 발생해도 의료진의 책임을 묻는 기준은 상대적으로 불명확하고, 제약회사의 마케팅이나 학술 후원이 처방 패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공론화가 충분하지 않다. 불법 유통과 투약에는 강력한 처벌이 따르지만, 합법 처방 영역에서 발생하는 의존과 중독에 대해서는 책임 주체가 흐릿하다.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중독이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은 불법 마약처럼 급격한 파괴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 일상생활을 유지한 채 서서히 의존이 깊어지고, 중단 시 불안·불면·공황·경련 등 증상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 때문에 개인의 의지 문제로 오인되거나, 다른 정신질환으로 잘못 해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역시 초기에는 처방약을 ‘안전한 의료 행위’로 인식했고, 그 결과 오피오이드 위기가 국가적 재난으로 번졌다. 2017년 미국 정부가 오피오이드 사태를 국가 공중보건 비상사태로 선언한 것은, 의료 자율과 선의에만 의존한 관리 체계가 실패했음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한국의 마약류 관리가 진정으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불법 단속 강화만으로는 부족하다. 합법 처방 영역에서의 중독 위험을 정면으로 다루고, 장기 처방에 대한 적극적 개입, 의료진과 환자 대상 교육 강화, 제약·의료 시스템 전반에 대한 책임 구조 재정립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약류 관리의 성패는 얼마나 강하게 처벌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일찍 중독을 막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의 허점을 방치한다면, 한국 역시 ‘처방에서 시작된 중독’이라는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작성자 한국마약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