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미국에서 오피오이드 진통제로 인해 사망한 인구는 약 4,000명에 불과했지만, 2013년에는 1만 6,235명으로 급증하며 10여 년 만에 4배 이상 늘어났다. 2021년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 약 110,700명 가운데 무려 80,400명(73%)이 오피오이드와 관련된 사례였다. 특히 펜타닐 등 합성 오피오이드가 개입된 사망은 70,600명으로 전체의 64%에 달한다. 이제 중독은 특정 계층이나 범죄자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까지 집어삼키는 국가적 재난이 되었다.
(설명 * 오피오이드(opioid) : 아편성분 알칼로이드와 화학적으로 합성된 옥시코돈, 펜타닐, 메타돈 등 ‘아편과 닮은 효과를 가진 약물 통칭)
이러한 현실과 가장 치열하게 맞서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중독의학 교수이자 스탠퍼드 중독치료센터 소장인 애나 렘키 박사다. 예일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스탠퍼드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한 그는, 수십 년의 임상 경험과 혁신적 치료 연구를 바탕으로 ‘중독의 메커니즘’과 ‘회복의 조건’을 밝혀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 《미국의학협회저널》 등 세계적 의학 저널에 1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그는 미국 정부와 상하원 중독정책 자문역까지 맡으며 의료 현장과 정책을 잇는 핵심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렘키 박사는 특히 치료를 위해 처방된 약물이 환자를 중독으로 내모는 기막힌 역설을 집중적으로 파헤쳐왔다. 진통제 오남용이 가져온 오피오이드 대유행을 분석한 저서 《중독을 파는 의사들》(2016)은 미국 의료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내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약물 의존이 ‘치료’의 결과가 아니라 또 다른 ‘질병’이 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의료계와 사회 전체가 중독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20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 출연해 SNS가 뇌 신경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밝히며 대중적 공감대를 확장한 그는, 《도파민네이션》(2021)에서 쾌락과 고통 사이 균형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뇌를 분석하고 회복의 방향을 제시했다. 렘키 박사는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약물에 의존하는 대신 고통을 견디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도파민의 유혹을 관리하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의료용 마약류 처방 경험자가 2천만 명을 넘어서는 등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의사들이 참여한 《중독을 파는 의사들》 한국어판 번역 작업은 이러한 경고를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그들은 “신중한 처방과 함께하는 의사결정이야말로 안전한 진료의 출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독이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사회·문화·의료체계가 만들어낸 복합적 질병이다. 애나 렘키 박사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고통을 바로 지워버리려는 조급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더 강하고 더 빠른 쾌락을 찾아가는 시대, 중독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말하듯, 인간의 뇌는 스스로 균형을 되찾을 힘을 갖고 있다. 바로 그 믿음에서, 회복은 시작된다.(한국마약신문=표경미 기자)